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• 광주 비엔날레

1. 광주의 페르소나

2. 북한 어린이를 위한 모금함

​광주의 페르소나

광주라는 지역사회와 문화를 하나의 살아있는 인격체로 보고 그 도시의 페르소나를 통하여 우리들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일이다. 전체 과정을 볼 수 있도록 스토리보드story board에 전 과정이 그려 있다. 작업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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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광주의 페르소나

2. 새하얀 신전

3. 공동 작업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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북한 어린이를 위한 모금함

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, <북한 어린이를 위한 모금함>, 5.18 묘역 야외전시/1998,

북한 어린이를 위한 모금함은 종이로 둥그렇게 구 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신문을 복사한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을 붙였다.  그런데 모금함에는 구멍이 없다. 도울 마음이야 있겠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나는 혹은 우리는, 언제나 행동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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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 유학 후 95년에 귀국하고 큐레이터 오혜주와 박찬국 덕택에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내지 현장에 참여하였다. 교수가 된 이후에 자발적으로 미술계-화랑 중심의 타블로 미술-를 떠났다고 할 수 밖에 없다. 단지 미술하는 과정을 즐기면서 간간이 친구들과 하는 그룹전을 이어가며 일상을 풍성하게 지낼 수 있었다. 퇴직하고 살펴보니 지난15차 광주비엔나레에서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큐레이터인 브리요가 총감독을 맡았다. 이미 미술계는 변해있었다. '저 혼자 30년 이상 해왔어요.'

일상 속에서 미술과 놀며 소통하려했지만 경청을 받아보지 못했다. 우연히 젊은 작가한테 이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'내게 온 물과 노밀다' 전시를 할 때 간디학교 학생들이 페미니즘 미술을 경험하겠다고 와서 함께 놀았다. 그리고 현대를 퇴직한 후 시인이자 사진가이며 현장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양영 성생 생각이 났다. 오히려 거리를 두고 있던 미술계에 나의 미술을 깔 자리가 있는 것이다. 노선을 바꿀 때가 되었다. 민중의 일상을 예술적으로 풍요롭게 할 문화운동의 한계 또한 그 부조리에 봉착한 즈음이었다. 공모전을 검색하다 CICA에 접했다. 연락이 왔다. '웬일이니?' 처음 몇달간은 사간동에있는 현대미술관으로 생각하고 신났었다.  부산 시립미술관도 지하에 있는 갤러리에 임대를 하여서 그 정도로 생각하고 진행하다보니 김포에 있는 사설미술관이었다. 오픈 일주일 전에야 들러보니 멀어도 너무 먼 곳. 우리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두시간 반이나 걸렸다. 취소하기도 늦었고 그냥 해야해서 초대도 못하고 알리기만 하였다. 

끝나고 구구립현대미술관과 내가 전시하고픈 보안여관을 검색하여 '우리와 그들'이라는 기획전에 지원하고 MMCA의 고양레지던시에 지원해보았다. 준비하는 몇달 동안 그 더운 여름에 꿈만 잘 꾸었다. 큰 아들한테 레지던시는 실패했다고 하니 '엄마 자질을 몰라 본다'고 한다. '우리 아들 최고' 그제서야 웃어 넘기게 된다. 망망 대해였다. 그래도 지원서에 H.P.주소를 요구하니 홈피를 정리하기 시작했다.내 페이스대로 묵묵히 꾸려나갈 수 밖에...26..09. 22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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